종가 베팅으로 수익을 낸 날 밤에도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. 차트는 분명히 올라 있는데, "이게 진짜 실적이 만든 상승인가, 아니면 그냥 돈이 밀어 올린 건가"라는 의심이 사라지지 않더군요. 그 찜찜함의 정체를 최근에야 좀 더 또렷하게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.

AI버블, 사과나무는 심었는데 사과는 아직 없다
저도 처음엔 엔비디아 실적을 보면서 "이번엔 진짜 다르다"고 생각했습니다. AI가 실제로 매출을 만들어내고 있으니 닷컴버블과는 다르다고요.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숫자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.
지금 빅테크 기업들이 AI 인프라에 쏟아붓는 자본적 지출(CAPEX)은 수백조 원 규모입니다. CAPEX란 미래 수익을 위해 지금 당장 집행하는 대규모 투자비용으로, 이 돈이 나가는 동안은 실제 수익이 뒤따르지 않아도 주가에는 기대감이 반영됩니다. 엔비디아의 폭발적인 매출은 바로 이 투자비용에서 나오는 것입니다. 문제는 그 투자가 언제 회수될지 아직 불분명하다는 점입니다.
월가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AI 투자 대비 실질 수익 회수까지 5년 이상이 걸릴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. 2000년 닷컴버블 당시 시스코는 인터넷 장비를 팔아 승승장구했지만, 기업들의 신규 발주가 끊기는 순간 주가는 90% 넘게 폭락했고 전고점 회복까지 20년이 걸렸습니다. 회사가 망해서가 아니라 너무 비싼 가격에 샀기 때문입니다. 지금 시장이 10년 뒤 수익까지 미리 당겨 가격을 매겨놓은 구조라면, 성장 전망이 단 한 번만 어긋나도 PER(주가수익비율)이 급격히 수축하면서 주가가 무너지는 시나리오는 충분히 현실적입니다. PER이란 현재 주가가 연간 순이익의 몇 배에 거래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, 이 수치가 지나치게 높을수록 기대감이 과도하게 선반영됐다는 신호로 읽힙니다.
부채리스크, 발밑에서 이미 금이 가고 있다
해외 증시보다 제가 더 불안하게 느끼는 건 사실 우리 발밑입니다. 서울 외곽 상가를 걸어보면 임대 문의 종이가 붙은 가게가 예전보다 확연히 늘었습니다. 그냥 느낌이 아니라 숫자가 이미 그걸 보여주고 있습니다.
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으며, 전체 가계부채 규모는 GDP 대비 100%를 넘는 수준입니다(출처: 한국은행). 이 수치는 주요 선진국 중에서도 이례적으로 높은 편에 속합니다.
그동안 이 부채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던 이유는 롤오버(Rollover) 정책 덕분입니다. 롤오버란 만기가 된 대출을 갚는 대신 기간을 연장해주는 방식으로, 쉽게 말해 카드 돌려막기를 제도적으로 허용해준 것입니다. 그런데 이 유예가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는 없습니다.
여기서 한 가지 더 무서운 게 레버리지(Leverage) 문제입니다. 레버리지란 빌린 돈으로 투자 규모를 키우는 방식으로, 수익이 날 때는 수익을 증폭시키지만 손실이 나면 원금 이상을 잃을 수 있습니다. 지금은 회사가 아니라 개인들이 주택담보대출, 신용대출, 마이너스통장을 끌어다 자산을 산 구조입니다. 금리가 조금만 오르거나 자산 가격이 일정 수준 이하로 내려가면 마진콜이 발동됩니다. 마진콜이란 담보 가치가 떨어졌을 때 금융기관이 추가 증거금을 요구하거나 자산을 강제로 처분하는 절차입니다. 내 의지와 관계없이 자산이 시장 최저가에 팔려나가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죠.
폭락이 왔을 때 실제로 사람을 죽이는 건 주가 하락 그 자체가 아니라 매달 나가는 이자와 원금, 그리고 그 독촉입니다. 저도 손절을 미루다가 며칠 만에 계좌가 흔들렸던 경험이 있는데, 그때 느낀 건 "버티는 게 용기가 아니라 그냥 도박이었구나"였습니다.
손절원칙, 시장은 맞히는 게 아니라 대응하는 것
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"그러니까 지금 당장 전부 팔아야 한다"는 결론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.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. 공포에 질려 원칙 없이 전량 매도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형태의 도박이기 때문입니다.
"폭락 확률 90% 이상"처럼 시장 방향을 숫자로 못 박는 순간, 그건 분석이 아니라 공포 마케팅에 가깝습니다. 워런 버핏이 현금을 400조 원 넘게 쌓아둔 건 사실이지만, 그건 시장 타이밍을 노리는 게 아니라 적정 가격의 매력적인 자산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더 정확합니다(출처: Berkshire Hathaway 주주서한). 같은 사실도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이 나오는 거죠.
제가 지금 실제로 지키고 있는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.
- -3% 손절 원칙은 어떤 경우에도 어기지 않는다. 한 번 예외를 두면 그게 습관이 됩니다.
- 수익이 난 종목은 일부 현금화해서 빚부터 줄인다. 욕심을 이기는 게 제일 어렵지만 제일 중요합니다.
- 가진 자산의 20~30%는 달러 자산으로 분산한다. 원화 가치가 흔들릴 때 환율 상승이 에어백 역할을 해줍니다.
- "지금 들어가지 않으면 늦는다"는 조급함이 느껴질수록 한 박자 멈춘다.
닷컴버블, IMF, 2008년 금융위기 때 도망쳤다면 폭락은 피했겠지만 이후 10년의 상승장도 통째로 놓쳤을 겁니다. 폭락을 피한 사람과 기회를 놓친 사람은 사실 같은 사람인 경우가 많습니다. 결국 중요한 건 시장의 방향을 맞히는 게 아니라, 어떤 상황에서도 계좌가 살아있도록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입니다.
지금 당장 계좌 전체를 팔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. 다만 빚부터 줄이고, 현금과 달러 비중을 점검하고, 손절 원칙을 다시 세우는 것만으로도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준비가 됩니다. "남들이 환호할 때 한 번쯤 의심해보라"는 말이 제 투자 원칙과 맞닿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. 시장은 기다려주지 않지만, 살아남은 사람에게는 반드시 기회가 옵니다.
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, 전문적인 금융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. 투자 결정은 반드시 본인의 판단과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.